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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달이 둥글게 떠오르네 손바닥에 굴리고 굴려 새알을 빚더니 손가락 끝으로 낱낱이 조개 입술을 붙이네 금반 위에 오뚝오뚝 세워놓으니 일천 봉우리가 깎은 듯하고 옥 젓가락으로 달아 올리니 반달이 둥글게 떠오르네 『김삿갓의 시』 >>송편의 묘사한 구절이다. 송편 빚는 모습을 이리도 생생하게 묘사를 하다니 감탄! 출처: 한식재단, 『화폭에 담긴 한식』, 92~93쪽 2023. 2. 4.
일 년 봄빛이 뱃속에 전해지누나 작은 시냇가에서 솥뚜껑을 돌에다 받쳐 흰 가루와 푸른 기름으로 두견화를 지져 쌍젓가락으로 집어먹으니 향기가 입에 가득하고 일 년 봄빛이 뱃속에 전해지누나. 『김삿갓의 시』 >>진달래화전을 먹으면 일 년 봄빛이 뱃속에 전해지다니~ 올 봄에도 진달래화전을 부쳐 먹어야 겠다. 출처: 한식재단, 『화폭에 담긴 한식』, 91~92쪽 2023. 2. 4.
달고 씩씩한 샘물이라야 한다 [술 담그는 법] 대저 술 담그는 법은 멥쌀이나 찹쌀을 백 번 씻고 찐 후에 차게 하여야 하고, 물은 샘물이나 정화수를 백 번 넘치게 끓여 식혀서 담근다. 누룩은 여러 날 햇볕에 쪼여서 술 담그면 잡맛이 없다. 또 곡식 가루나 그릇 만들 흙을 물에 풀어 휘저어서 잡물을 없애는 수비과정을 거친 물이면 더욱 좋다. 그릇 또한 깨끗이 씻어야 맛이 변하지 않는다. 찹쌀이 많으면 술맛이 시고 누룩이 많으면 맛이 쓰다. 무릇 술 만드는 데는 달고 씩씩한 샘물이라야 한다. 만일 물이 좋지 못하면 술맛이 좋지 못하다. 옛사람 말이 샘이 씩씩하면 술에서 향기로운 냄새가 난다고 했으니, 청명 날의 물이나 곡우 날의 물로 술을 담그면 술 빛깔이 푸르고 붉은 순색이 난다. 맛도 씩씩해서 오랫동안 놓아두어도 변치 않는다 하였다.. 2023. 2. 3.
호원숙 『엄마 박완서의 부엌, 정확하고 완전한 사랑의 기억 』 67쪽 입맛이 없을 때 새우젓을 넣고 호박이 투명해지고 말캉해도록 뭉근히 익히면 하나만으로 충분한 반찬이 된다. 68쪽 노각의 미끈미끈한 시원함이 목으로 잘 넘어간다고 간결하고도 맛나게 드시던 모습. 늙은 오이의 겉은 거칠거칠하고 험악한 피부를 가졌지만 속은 연둣빛 흰색을 띤 무미의 맛. 그 매력을 헤아리게 된다. 69쪽 미끈하게 잘생기고 한 손에 잡히고 싱싱한 무청이 붙어있는 것을 발견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길고 굵은 무청은 말리거나 삶아서 감무리해놓으면 긴요하게 쓸 수 있다. 잘생긴 동치미 무에 굵은 소금을 굴릴 때마다 생각나는 외할머니의 그 자연스러운 위엄과 분위기가 그립다. 비록 옛 맛이 나지는 않지만 그 감촉을 떠올리기 위해 동치미를 담근다. 70쪽 아무 맛이 없지만 곰삭은 무의 희미한 맛이 속.. 2023. 2. 3.
조흔 쌀로 만든 떡 114쪽 백설기 조흔 멥쌀을 가루를 만들되~ 119쪽 인절미 찹쌀을 조흔걸로 졍이씨서 불려서 시루에 안치고~ 출처: 이용기,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 >> 동네 방앗간에 앉아 있으면 불린 쌀을 한 소쿠리 들고 와 떡을 뽑아 달라는 어머니들을 목격한다. 새하얗고 표면은 매끄러우며 물을 먹어 통통하니 잘 불은 쌀을 가져오는 경우도 있지만 반나절이나 불렸는데도 잘 불지 않아 퍼석퍼석하거나 누렇게 색이 변한 묵은 쌀, 벌레가 먹어 표면이 울퉁불퉁한 쌀, 곰팡이에게 잠식당한 쌀을 들고 오는 경우도 있다. 대부분은 버리기에 아까워 떡이라도 할 요량으로 들고 오지만 개중에는 맛없는 쌀도 떡을 하면 맛있어진다는 믿음으로 들고 오기도 한다. 밥을 지어도 맛없는 쌀은 떡을 지어도 맛이 없다. 밥을 짓기 곤란할 정도라는 것은.. 2023. 2. 3.
다과일지 #18 : 백지 앞에서 백지 되기 고백하자면, 이 블로그에는 112개의 글이 있다. (이 글 포함 113개) 요즘 매일 2시간, 백지 앞에서 엉덩이를 뭉개서 얻은 결과다. 어떤 날은 새벽 4시, 어떤 날은 미루고 미루다가 밤 10시가 넘어서야 메모장을 펴고 백지와 마주한다. 타닥타닥 키보드 소리와 함께 흩날리는 문장들을 쏟아내지만 그것들을 이을 방법은 없어 보인다. 막막하고 묘연하다. 하지만 썼으니... 본다. 또 본다. 읽고 또 읽는다. 숫자로 승부가 나지 않으니 이번에는 자세히 본다. 고개를 모니터 앞으로 쭈욱 뺀다. 어깨와 등은 동그랗게 말리고 초점은 뿌옇다 못해 다시 백지가 될 기세다. 도망치고 싶은 마음까지 고개를 쳐든다. 하지만 오늘의 나는 도망치는 대신 엉덩이를 뭉갠다. '비공개 저장' 대신 '공개 저장'을 눌러 부끄워지기로.. 2023. 1. 12.
다과일지 #17 : 햇생강 구출 작전 부친상을 치르고 일주일이 지나서야 작업실 문을 열었다. 작업대 가운데에는 다음날 잘 쓰기 위해 말끔히 씻어 얼기설기 포개놓은 그릇과 요리 도구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하나 둘 제자리를 찾아 주니 작업대 귀퉁이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생강 더미가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니 씻지 않은 생강은 겉흙이 말라 허옇게 떠있었고 기분 탓인지 모르겠으나 속도 수분을 잃어 뭔가 작아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씻어 놓은 생강은 맨질하고 투명했던 껍질이 굳은살마냥 꺼칠하고 탁해져 있었다. 햇생강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의 모양새에 동공이 요동치고 어수선해진 마음이 재잘대기 시작했다. ‘모두 상해버린 걸까?, 이 아까운 걸 어째.’ 갓난 아기의 손가락, 발가락을 세듯이 꼼꼼이 앞 뒤 돌려 가며 꼼꼼이 살펴 보고 손가락.. 2022. 11. 26.
다과일지 #16 : 생강 위에 핀 하얀 곰팡이 작업실을 열어 보니 얇게 저며 설탕에 담가 놓았던 생강 위에 하얀 곰팡이가 펴있었다. 햇생강을 맞이하여 분주했던 그 날. 갓 캐낸 생강의 향긋함을 잃기 전에 토종생강과 개량생강의 맛과 차이를 꼼꼼히 기록하고 싶어 전투적으로 움직였던 하루였다. 온종일 씨름했음에도 힘이 솟아나 뒷정리까지 다한 후에야 전화기를 들여다보았다. 꽤나 급박하게 울렸을 부재중 전화 표시와 “임종”이라는 단어가 포함된 문자가 보였다. 엄마와 짧은 통화를 마치고 아빠가 있는 요양병원으로 향했다. 눈이 휘둥그레지고 심장이 빨리 뛰었지만 7년이라는 시간동안 여러번 마음의 준비를 해야만 했기에 그 날도 잠시 놀라고 마는 날들 중 하나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병원에 들어서자마자 병원 로비에 덩그라니 있는 엄마와 따로 마련된 병실로 가기 위해.. 2022. 11. 21.
다과일지 #15 : 새벽 4시 새벽 4시 손목에서 알림이 울린다. 지지지지ㄴ인인인도도도동- 어젯밤 주문이 먹혔는지 실랑이 하지 않고 벌떡 일어나 책상 앞에 앉았다. 어젯밤 걸어둔 주문은 ‘일어나 단 5분만 글을 쓰자.‘ 씨익- 그런데 머어어어엉————— 다시 돌아온 새벽 4시는 낯설기만 하다. *** 오늘은 정말 5분만. 2022. 1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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