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과일지14 다과일지 #22 : 새벽 4시부터 6시 맙소사, 2시간이 훌떡 지나갔다. 몇 번 씹지도 않은 떡들이 오미자국을 타고 목구멍으로 훌렁훌렁 넘어가는 떡수단처럼 말이다. 오늘은 대추에 대해 썼다. 대추에 대해 할 말이 얼마나 많은지 노트 한 가득 문장들이 주렁주렁 매달렸다. 느긋하고 정성껏 쓰여진 산문집을 보며 그의 말투를 흉내내어 대추에 대한 기억을 써내렸다. 쪼글쪼글한 대추의 주름을 솔로 정성껏 씻겨 주면서 할머니가 된 나를 상상해 보는 내용이다. 구부정하게 등을 말고 쭈그려 앉아 햇볕을 쬐고 있는, 묵은 대추 속살처럼 직사광선에 잘 구워진 갈색 빛깔에 아무리 불려도 펴지지 않을 것 같은 깊고 짙은 주름을 가진, 그 주름은 대추 껍질처럼 광이 나고 힘이 있어 반사광에 해를 눈부시게 하는 그런 대추 같은 할머니가 되겠다고 썼다. 이제 산보를 하러.. 2023. 2. 18. 다과일지 #19 : 세 번이나 펑크 낸 마감 부끄럽다. 평소에 시간은 칼같이 지켜야 한다고 침을 튀기며 말하던 내가 정해진 세 번의 마감일을 모두 펑크냈다. 두 번은 백지로 나머지 한 번은 완성되지 않은 것을 보내고 나서 온 몸에서 부끄러움이 솟구쳤다. 쓰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것일 줄이야. 물 속에 서 있는 것조차 어색했던 수영강습 첫 날처럼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허둥대고 허우적댔다. 요근래 내 인생에 모험을 들여놓지 않았다. 하던 것만 하고, 만나던 사람만 만났다. 일을 벌이더라도 최대한 안전한 것, 해낼 수 있는 것, 혼자서 하는 것만 골라 했다. 그러다 보니 점점 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러다 곧 점이 되겠구나. 소멸이 압박해오던 찰나 손 하나가 나를 향해 걸어왔다. 그 손은 꽤나 안심되는 말투로 내가 평소 '꼭 하겠다고 소리내어 말하.. 2023. 2. 7. 다과일지 #18 : 백지 앞에서 백지 되기 고백하자면, 이 블로그에는 112개의 글이 있다. (이 글 포함 113개) 요즘 매일 2시간, 백지 앞에서 엉덩이를 뭉개서 얻은 결과다. 어떤 날은 새벽 4시, 어떤 날은 미루고 미루다가 밤 10시가 넘어서야 메모장을 펴고 백지와 마주한다. 타닥타닥 키보드 소리와 함께 흩날리는 문장들을 쏟아내지만 그것들을 이을 방법은 없어 보인다. 막막하고 묘연하다. 하지만 썼으니... 본다. 또 본다. 읽고 또 읽는다. 숫자로 승부가 나지 않으니 이번에는 자세히 본다. 고개를 모니터 앞으로 쭈욱 뺀다. 어깨와 등은 동그랗게 말리고 초점은 뿌옇다 못해 다시 백지가 될 기세다. 도망치고 싶은 마음까지 고개를 쳐든다. 하지만 오늘의 나는 도망치는 대신 엉덩이를 뭉갠다. '비공개 저장' 대신 '공개 저장'을 눌러 부끄워지기로.. 2023. 1. 12. 다과일지 #14 휘갈겨 쓴 마인드맵 안에서 고심하여 고른 이번 주에 할 일은 "어떻게 하면 잘 기록할 수 있을까?"에 대한 물음에 답을 구하는 일이다. [답을 구하는 과정] 1.숭님 인스타그램 ->나누고 싶은 문장들을 사진으로 찍어 올리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나도 인상깊게 본 요리와 관련된 문장들을 공유하고 싶은데 이 방식으로 하면 가벼운 마음으로 꾸준히 할 수 있을 것 같다. 2.이승희, 135쪽 매일 밤 정리하는 시간 매일 자기 전 책상에 앉아서 하루 동안 받은 영감과 대화를 다시 정리한다. 일기 쓰듯 하는 나만의 루틴이다. 따로 남겨두고 싶은 영감은 장문을 위한 소재가 된다. 그런 글들은 '목요일의 글쓰기' 때 다시 꺼내거나 개인 블로그에 쓰거나, 또 연간 다이어리에 적어둔다. 하루 동안 나에게 영감을 이렇게 체화.. 2022. 9. 15. 다과일지 #13 1년동안 지연되고 진척없던 일들이 정리되고 이사를 하고- 또 하나의 커다란 이슈에 직면하고 해결하면서 좁쌀만한 인간은 참 많이 허우적댔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많이 단단해졌달까. 벌벌 떨면서도 힘을 실어 한 발, 한 발 내딛었더니 거대했던 그것은 좁쌀만해지고 좁쌀만했던 인간은 거대해졌다. 그렇게 그 좁쌀만 했던 인간은 난 놈에게나 있을 법한 거대해진 마음으로 달방앗간 앞에 다시 섰다. 그런데, 결과는 멍 + 멘붕-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당췌,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 그때와 지금 사이에 너무 많은 것들이 끼어들어서인지 그때와 지금 사이에 그 인간이 너무 많이 변해서인지 그 인간은 달방앗간이 그저 막연하고 낯선 존재로만 느껴졌다. 그래도 거대한 마음은 지지 않고 흰 종이를 펴고 .. 2022. 9. 14. 다과일지 #11 어제 하루 쉬었다고 엉망진창이 된 작업대와 정리대를 보고 소매를 걷어 붙이고 청소와 정리를 시작했다. 바닥와 작업대를 힘을 주어 박박 닦아내고 촬영계획서를 쓰고 그에 맞춰 재료를 계량하고 도구들도 배치했다. 깨끗하게 정돈된 것을 보니 뿌듯하고만. 다과를 만드는 데에 가장 중요한 일이 뭐냐고 묻는다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청소와 정리라고 말할 것이다. 만들기 전의 청소와 정리, 만들면서 청소와 정리 그리고 만들고 나서 청소와 정리:-) 그렇게 가장 중요한 일을 끝내고 책상 앞에 앉아 오후 일과 시작. 그런데 부장님 포스로 레이저빔 쏘고 계신 고마님. 부담스럽다. ㅋ 갑자기 부장님이 되신 고마님과의 사이에 칸막이 설치라도 해야 겠다. (22. 4. 10) 2022. 4. 10. 다과일지 #10 2022년 4월 9일 새벽 5시, 계수대 풍경. 어제는 너무 신나서 완급 조절을 하지 못하고 아침부터 해가 질때까지 반죽을 치대고 튀겨댔다. 궁금했던 것들을 이것저것 해보았는데 특히, 맛이 없었던 통밀 대신... 비슷한 색을 내려고 흰 밀가루에 도토리가루를 섞어 만들어 보았는데 예상보다 맛있어서 놀랐다. 그렇게 새하얗게 불태웠더니 근육통이 지끈거리고 눈은 반쯤 풀려 있었다. 그래서 계수대를 이 모양으로 방치해놓고 뻗어버렸다. 설거지만 하고 다시 뻗어야 겠다. (22. 4. 9) 2022. 4. 10. 다과일지 #9 세상 소음은 다 끌어당기고 있는 요즘... 오늘은 전투기를 끌어 당겼나 보다. 우리 동네 정찰하는 날인지 10분에 한 번 꼴로 출몰. 비행기 소리가 날때마다 끊어 촬영하다가 나중에는 무시하고 그냥 찍었다. 덕분에 개나리 과자 촬영에 끝마칠 수 있었다:-) (22.04.07) 2022. 4. 10. 다과일지 #8 매화와 산수유를 지나 목련, 개나리, 벚꽃까지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봄꽃을 주제로 만든 과자들이었으므로 2월쯤 영상을 완성시키고자 했으나 계속 지연되자 똥줄이 탔다. 아니, 3월말쯤까지 똥줄이 타다가 지금은 해탈했다. 첫 주제는 매화였는데 매화가 핀지는 오래였고 계속 그것을 말아먹고 있어서 오늘은 그것을 건너뛰고 개나리로 가기로 했다. 그런데다가 개나리는 반죽이나 성형이 매우 쉬웠으므로 한 큐에 찍어 하나라도 완성해보기로 했다. 하지만 이 쉬운 것을 또 말아먹었다. 너무 오래 튀겨~ ㅋ 노란빛을 갈색빛으로 만들었기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반죽하여 튀겼으나 다시 갈색빛으로... 뭔가 고장난 게 틀림없다. 잠시 넋을 잃었지만 너털웃음으로 근심을 날려 버리기로 했다. 괜찮다. 한 게 어디냐! 그래도 오늘.. 2022. 4. 6. 이전 1 2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