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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방앗간23

다과일지 #22 : 새벽 4시부터 6시 맙소사, 2시간이 훌떡 지나갔다. 몇 번 씹지도 않은 떡들이 오미자국을 타고 목구멍으로 훌렁훌렁 넘어가는 떡수단처럼 말이다. 오늘은 대추에 대해 썼다. 대추에 대해 할 말이 얼마나 많은지 노트 한 가득 문장들이 주렁주렁 매달렸다. 느긋하고 정성껏 쓰여진 산문집을 보며 그의 말투를 흉내내어 대추에 대한 기억을 써내렸다. 쪼글쪼글한 대추의 주름을 솔로 정성껏 씻겨 주면서 할머니가 된 나를 상상해 보는 내용이다. 구부정하게 등을 말고 쭈그려 앉아 햇볕을 쬐고 있는, 묵은 대추 속살처럼 직사광선에 잘 구워진 갈색 빛깔에 아무리 불려도 펴지지 않을 것 같은 깊고 짙은 주름을 가진, 그 주름은 대추 껍질처럼 광이 나고 힘이 있어 반사광에 해를 눈부시게 하는 그런 대추 같은 할머니가 되겠다고 썼다. 이제 산보를 하러.. 2023. 2. 18.
동앗국을 통해 바라 본 '동아정과 ' 동앗국 여름이 되면 채소 가게 선반에 커다란 동아가 무표정으로 떡하니 누워 있는데, 나는 오랫동안 이 짙은 초록색의 비치볼 같은 채소를 피했다. 몇 번인가 여관에서 식사를 할때 안카케(전분으로 걸쭉하게 만든 국물을 끼얹은 요리)로 만든 것을 먹어보고 그 애매한 식감과 풋내 나는 풍미가 입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지간한 혐오 식품이 아니면 음식을 거의 가리지 않는 나지만, 이것만은 도저히 역부족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지인의 집에서 술을 마신 뒤 나온 따끈 따끈한 맑은 동앗국을 먹고 나서 동아에 완전히 매료됐다. 그게 참 맛있었다. 그때까지 먹었던 동아 요리와는 전혀 달랐다. 얄팍하게 썰었는데 단단한 식감이 있고 생강으로 맛을 낸 소박한 국이었다. 그때부터는 자주 먹곤 했는데 요즘은 얼른 여름이 되어 .. 2023. 2. 11.
다과일지 #20 : 정오에 오는 요정 요즘 오후 9시에 잔다. 그 시간만 되면 졸렵기도 하고 다시 새벽에 일어나고 싶기때문이다. 지난 한달동안 글을 쓴다며 밤을 지새운 탓에 낮과 밤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주로 새벽 4시반에 일과를 시작했다면 최근에는 새벽 4시반에 일과를 마치고 있다. 글은 밤에 더 잘 써지지만 몸이 축나고 낮에 해야 할 일들을 미루게 되어 이 습관이 썩 반갑지 않다. 그래서 다시 밤에 자고 낮에 일하기로 했다. 그런데 문제는 12시에 깨는 것이다. 자정 12시. 정오 12시도 기가 막히지만 자정 12시도 난감하기 그지없다. 3시간을 푹 재운 후에 개운한 몸과 말똥한 정신을 부여한 후 이제 다시 일을 하라고 재촉한다. 불을 끄고 누워있는 것만으로 잠자는 효과가 있다는 말이 떠올라 누워 저항도 해보지만 소용없다. 까만 천장 위.. 2023. 2. 9.
복떡 백설기와 액막이떡 수수팥떡 산후 100일째 되는 날을 백일(百日)이라고 했다. 이 날은 아이의 무병장수를 빌면서 음식을 마련했다. '백(百)'에는 '많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어 많ㅇ느 날을 무탈하게 살아준 아이를 위해 특별히 잔치를 여는 것이다. 흰밥, 미역국, 백설기, 수수팥떡, 인절미, 송편 등을 만들어 상에 올리지만, 백일 떡 하면 뭐니 뭐니 해도 백설기다. 백일의 백은 백설기의 백과도 통하여 백일에 특별히 백설기가 오르는 것은 어린아이의 방수를 바라는 부모의 소망이 담겨 있다. 아울러 백은 깨끗함을 뜻해 잡귀와 부정을 막는 의미도 담겨 있다. 수수팥덕은 액막이를 위해 올리는 떡이다. 출처: 한식재단, 『화폭에 담긴 한식』, 137쪽 2023. 2. 7.
다과일지 #19 : 세 번이나 펑크 낸 마감 부끄럽다. 평소에 시간은 칼같이 지켜야 한다고 침을 튀기며 말하던 내가 정해진 세 번의 마감일을 모두 펑크냈다. 두 번은 백지로 나머지 한 번은 완성되지 않은 것을 보내고 나서 온 몸에서 부끄러움이 솟구쳤다. 쓰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것일 줄이야. 물 속에 서 있는 것조차 어색했던 수영강습 첫 날처럼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허둥대고 허우적댔다. 요근래 내 인생에 모험을 들여놓지 않았다. 하던 것만 하고, 만나던 사람만 만났다. 일을 벌이더라도 최대한 안전한 것, 해낼 수 있는 것, 혼자서 하는 것만 골라 했다. 그러다 보니 점점 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러다 곧 점이 되겠구나. 소멸이 압박해오던 찰나 손 하나가 나를 향해 걸어왔다. 그 손은 꽤나 안심되는 말투로 내가 평소 '꼭 하겠다고 소리내어 말하.. 2023. 2. 7.
여름의 무른 눈가들, 이혜미 『식탁 위의 고백들』 中 56쪽 속수무책과 엉망진창. 때로 여름은 이 두 단어를 완성하기 위한 계절 같다. 늦여름 시장에 가면 플라스틱 바구니에 쌓인 과일들을 제법 싼 가격에 만난다. 대체로 작은 산처럼 쌓아올렸거나 비닐 팩에 담겨 있지만 다치거나 멍든 과일들을 따로 모여 박스 한켱에 웅크려 있다. 여름의 밑바닥에서 짓물러가는 열매들. 그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묘하게 매력 있어서 과일을 살 때면 습관적으로 떨이 과일들이 모여 있을 만한 구석을 살피곤 한다. 뭉개지고 순해지고 썩어가는 끝물. 이건 서서히 젖어가다 달게 무너지는 자리들에 대한 이야기다. 58쪽 어쩔 수 없이 끈적이고 흘러넘치는 여름 마음. 68쪽 부주의하게 들고 다닌 탓에 검은 봉지 밑으로 터진 자두의 붉은 빛이 뚝뚝 흘렀다. 이렇게 정신없이 출렁이는 마음을 만난 .. 2023. 2. 6.
바닷물을 끓이고 졸여 소금을 만드는, 전오제염법 태양과 바람으로 수분을 증발시켜 소금을 만드는 방법인 천일제염이 등장하기 전에는 화력에 의한 전오제염법이 사용되었다. 전오제염법은 진흙을 깐 염전을 조성한 다음 바닷물을 끌여들여 높은 염분을 머금은 진흙을 체를 건 통 위에 얹어 놓고 그 위에 다시 바닷물을 뿌린 고염도의 간수를 모은 다음 이를 끓여서 소금을 제조하는 방법이다. 서까래에 매단 철로 만든 소금가마에 바닷물을 부어 졸인다. 소금물을 불에 졸인다 하여 화염, 자염이라는 명칭도 있다. 한 달 중 상현과 하현 기간에 바닷물이 물러가면 염전이 만들어지는데, 이때 바닥을 써래를 매단 소를 이용하여 하루 3회씩 갈아엎고, 그 위에 바닷물을 골고루 뿌려 증발시켜 소금기가 농축된 짠 흙을 만들고, 그 짠 흙에 다시 바닷물을 부어 진한 소금물을 만든 다음 이.. 2023. 2. 5.
일 년 봄빛이 뱃속에 전해지누나 작은 시냇가에서 솥뚜껑을 돌에다 받쳐 흰 가루와 푸른 기름으로 두견화를 지져 쌍젓가락으로 집어먹으니 향기가 입에 가득하고 일 년 봄빛이 뱃속에 전해지누나. 『김삿갓의 시』 >>진달래화전을 먹으면 일 년 봄빛이 뱃속에 전해지다니~ 올 봄에도 진달래화전을 부쳐 먹어야 겠다. 출처: 한식재단, 『화폭에 담긴 한식』, 91~92쪽 2023. 2. 4.
달고 씩씩한 샘물이라야 한다 [술 담그는 법] 대저 술 담그는 법은 멥쌀이나 찹쌀을 백 번 씻고 찐 후에 차게 하여야 하고, 물은 샘물이나 정화수를 백 번 넘치게 끓여 식혀서 담근다. 누룩은 여러 날 햇볕에 쪼여서 술 담그면 잡맛이 없다. 또 곡식 가루나 그릇 만들 흙을 물에 풀어 휘저어서 잡물을 없애는 수비과정을 거친 물이면 더욱 좋다. 그릇 또한 깨끗이 씻어야 맛이 변하지 않는다. 찹쌀이 많으면 술맛이 시고 누룩이 많으면 맛이 쓰다. 무릇 술 만드는 데는 달고 씩씩한 샘물이라야 한다. 만일 물이 좋지 못하면 술맛이 좋지 못하다. 옛사람 말이 샘이 씩씩하면 술에서 향기로운 냄새가 난다고 했으니, 청명 날의 물이나 곡우 날의 물로 술을 담그면 술 빛깔이 푸르고 붉은 순색이 난다. 맛도 씩씩해서 오랫동안 놓아두어도 변치 않는다 하였다.. 2023.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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