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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앗국을 통해 바라 본 '동아정과 '

산파 2023. 2. 11. 06:21

동앗국

여름이 되면 채소 가게 선반에 커다란 동아가 무표정으로 떡하니 누워 있는데, 나는 오랫동안 이 짙은 초록색의 비치볼 같은 채소를 피했다. 몇 번인가 여관에서 식사를 할때 안카케(전분으로 걸쭉하게 만든 국물을 끼얹은 요리)로 만든 것을 먹어보고 그 애매한 식감과 풋내 나는 풍미가 입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지간한 혐오 식품이 아니면 음식을 거의 가리지 않는 나지만, 이것만은 도저히 역부족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지인의 집에서 술을 마신 뒤 나온 따끈 따끈한 맑은 동앗국을 먹고 나서 동아에 완전히 매료됐다. 그게 참 맛있었다. 그때까지 먹었던 동아 요리와는 전혀 달랐다. 얄팍하게 썰었는데 단단한 식감이 있고 생강으로 맛을 낸 소박한 국이었다. 그때부터는 자주 먹곤 했는데 요즘은 얼른 여름이 되어 동아가 나오기를 손꼽아 기다릴 정도다. 채소 가게에서 발견하면 "아, 동아다!" 하고 그만 목소리를 높이고 만다. 조리하는 방법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때 절실히 깨달았다.


앞서 말한 동앗국 만드는 법이다. 우선 적당한 크기로 자른 동아의 씨가 든 부드러운 부분을 카페 스푼으로 긁어낸 뒤 초록색 딱딱한 껍질을 벗긴다. 그러고 나서 연두색 살 부분을 얇게 썬다. 가다랑어 국물을 내어 술, 간장과 소금으로 간을 한 뒤 끓어 오르면 동아를 넣고 물에 푼 전분을 조금 넣어 약간 걸쭉하게 만든 다음 확 끓였다가 불을 끈다. 그런 다음 생강즙을 넣으면 완성이다. ... 간장은 아주 약간 향을 내는 정도로만 넣고 소금으로 간을 조절하는 게 좋다.

출처: 미키노 이사노, 『오로지 먹는 생각』 123~1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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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맛 본 동앗국은 어떤 맛일까? 문장을 따라 상상을 해보자면 가다랑어 국물에 간장, 소금으로 간을 했으므로 황태 국물에 소금으로 간으로 한 무국에 가까울 싶다가 전분을 푼 물과 생강즙을 넣는다니 어떤 맛일지 아리송하다. 우리나라의 동앗국은 어떤 모습인지 궁금해서 검색창에 '동앗국'을 쳐보았다. '동아를 잘게 썰어 넣고 새우젓국을 넣어서 끓인 국' 이라는 짧은 문장 하나가 나왔다. 새우젓을 넣어 끓인 호박국과 무국을 상상해 보지만 그 맛을 상상하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다.

과거 우리나라에서 동아는 자주 사용하던 식재료였다. 하지만 현재는 이름조차 생소하다.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아 마트에서는 보기 어렵고 농사짓는 분을 직접 찾거나 어떤 고집때문인지 동아를 떼어다 파는 채소가게에서나 우연히 만날 수 있는 희귀한 것이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동아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요리가 거의 없다.

나에게도 동아는 낯선 식재료다. 전통다과 수업에서 '동아 정과'를 만들기 위해 딱 한 번 접해본 게 전부다. 그 당시 열성 학생이었던 나는 수업을 받고 와서 배운 것을 혼자 꼭 만들어 보았는데 동아정과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동아로 만든 정과가 특별히 맛있는 것도 아닌데다가 재료를 구하는 것도, 만드는 과정도 낯설고 까다롭기때문이었다.

우선, 사홧가루(꼬막 껍데기를 태운 가루)가 필요하다. 정과를 만들기 위해서는 꿀물이나 설탕물에 졸였다 식혔다를 반복해야 하는데 동아는 끓이면 무처럼 쉽게 부서진다. 그래서 자박하게 썬 동아를 사홧가루에 재어 단단하게 만든 다음 불 위에 올린다. 그런데 이름도 생소한 사홧가루를 구하는 것도 만만치 않아 보이는데다가 이 요상한 가루를 동아에 발라놓는 요리법이 내키지 않는다.

그뿐인가. 동아 또한 구하기 쉽지 않은데다가 크기는 얼마나 큰지. 맛만 볼 요량으로 도전하기에는 양이 어마어마하게 많아 부담스럽다. 또, 사홧가루로 아무리 단단하게 만들었더라도 여전히 섬세하게 졸이고 식히지 않는다면 뭉개지거나 부서질 수 있다. 어느 하나 쉬워 보이는 게 없다. 까다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나도 모르게 뒷걸음치는 심경과 같다.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팔할이지만 아쉬움도 이할 있다. 영영 멀리하기에는 동아 정과를 오롯이, 제대로 만나 본 적이 없기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가을에는 용기를 내어 보려 한다. 그래야 학을 떼고 손절을 하든 사랑에 빠지든 결판이 나지 않겠는가. 그리고 남은 동아로는 동앗국도 끓여 먹어 볼까 한다. 어떤 맛인지 궁금하다.
이게 주된 목적일지도.

**동아는 박과식물로 맛과 식감이 호박보다는 오이(오이도 박과식물임)나 무에 더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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